작가 노트

 나는 장소를 단순한 배경이나 사건의 위치로 보지 않는다. 나에게 장소는 시간의 축적과 감각적 흔적이 중첩된 상태이며, 사회적 기억의 잔여, 역사적 흔적, 물질적 조건, 비인간적 움직임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인 층위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부분 비가시적이지만, 분명히 현재를 구성하고 있으며 단일한 서사로 환원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직접 방문했을 때 더욱 분명해졌다. 그곳에서 나는 영상과 사진, 텍스트를 통해 접해왔던 역사적 서술과는 다른 층위를 마주하게 되었다. 공간에는 설명되지 않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냄새와 분위기, 벽면의 그을림과 같은 감각적 요소들은 기억된 정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장소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그 경험은 즉각적인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이후의 작업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의문을 남겼다. 기억을 통해 장소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먼저 감각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접촉 이후에 기억과 만나는 구조가 가능한가. 그리고 그 구조가 기억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의문은 특정한 형태의 작업으로 곧바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장소를 다루는 나의 방식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작동해온 근원적인 질문이 되었다.

 나는 이러한 층위를 다루는 데 있어, 다큐멘터리적 재현 형식이 만드는 수동적 수용 구조에 한계를 느껴왔다. 하나의 대상을 완결된 이야기로 정리하고, 관객을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위치에 두는 방식은 내가 다루고자 하는 장소의 복합적 상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나는 기억을 고정된 이미지나 완결된 서사로 보지 않는다. 기억은 언제나 일부만 드러나고 일부는 사라진 채 남아 있으며, 언어로 정리되기 이전에 감각적 흔적, 물질적 표면, 비동시적인 파편의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작업에서 파편적 배열과 비선형적 구조를 반복해 사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파편은 기억과 장소가 존재하는 방식에 더 가까운 형식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장소에 담긴 이야기를 대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소의 과거를 하나의 서사로 정리하거나, 그곳에 있었던 사건과 기억을 설명 가능한 정보로 재구성하는 일은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의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장소가 지금 어떤 상태로 남아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마주하게 하는 구조에 관심이 있다. 장소는 과거의 흔적을 품고 있지만, 그 흔적은 현재의 물질적 조건, 환경의 변화, 인간과 비인간의 움직임 속에서 계속 달라진다. 따라서 장소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듣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잔여가 현재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남아 있고, 약화되고, 다시 드러나는지를 감각적으로 접촉하는 일에 가깝다.

 이때 관객의 행위는 단순한 참여나 조작이 아니다. 나의 작업에서 관객은 완성된 의미를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장소의 상태에 개입하고 그 흔적을 잠시 활성화하는 존재가 된다. 걷고, 찾고, 줍고, 바라보고, 선택하고, 반복해서 개입하는 행위들은 기억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적 과정이 아니라, 기억이 현재에서 작동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된다. 관객의 행위가 들어가는 이유는 기억이 고정된 대상처럼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접촉과 개입을 통해 일시적으로 감지되는 상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은 장소의 이야기를 전달받는 수신자가 아니라, 장소의 현재와 관계를 맺으며 기억의 흔적을 부분적으로 감각하는 행위자가 된다.

 나에게 기억은 기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기록은 남아 있는 흔적과 조건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하나의 구조이지만, 기억은 그보다 넓은 층위에서 존재한다. 기억은 기록되지 않은 채 장소와 물질, 신체적 실천 안에 남아 있으며, 감각적 접촉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흔적들을 포함한다. 영상, 사진, 사운드, VR,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 서로 다른 매체를 거쳐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체의 선택은 표현 방식의 확장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역사적·생태적·물질적 맥락이 담고 있는 기억과 감각적으로 다시 관계 맺기 위한 탐구의 결과이다.



유미루
Miru Yoo
2026